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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and Domestic Issues/International Issues

최근 국제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과정 정리

by ruahryu 2021. 4. 29.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언급하며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관한 글입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 내에서 아르메니아인을 대상으로 자행된 일련의 집단학살사건을 말합니다. 주장하는 측마다 다르나 희생자만 대략 100만에서 15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끔찍한 제노사이드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아르메니아 대학살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과정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당시의 사진,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다.

 

<원래는 친했던 오스만 제국과 아르메니아>

1894년 오스만 제국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는데, 19세기에 그리스 독립전쟁을 통해 그리스를 마지못해 독립시키고 유럽 열강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오스만 제국에선 그리스 독립 이후 오스만 제국은 더 이상 그리스인을 요직에 기용하지 않으면서부터 드라고만(Dragoman - 서구와의 교섭을 위해 설치한 외교부) 같은 관료직에 '아르메니아인'을 대거 기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에 순종적 이였던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인들을 요직에 앉게 한 이유는 발칸 반도의 슬라브 인들과 그리스인들이 민족의식을 가지고 자치 혹은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서도, 아르메니아인들은 대체로 수동적인 모습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또한 도시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오스만 정부 덕분에 자신들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독립에 대한 동력이나 처지에 대한 불만이 없었습니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아르메니아>

하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이라고 언제까지 2등 신민의 처지를 받아들일 것은 아니었고, 아르메니아인들 사이에 교육 받은 지식인층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이들도 자신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1875년에는 아르메니아 총대주교까지 나서서 토지 몰수, 무슬림들에 의한 약탈과 강제 개종, 강간과 살인을 막아달라고 청원했지만 내부 문제가 심각했던 오스만이 그들의 청원대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어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한 경우는 전무했다고 합니다.

 

 

 

<변화의 시작 러시아의 아르메니아 지원>

정교회와 연관된 아르메니아의 편을 든 러시아 제국은 아르메니아인 거주 지역에서의 아르메니아인 권리 향상을 강제했습니다. 이 결과로 여태껏 제국에 눌려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되었고, 본격적인 아르메니아 독립 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르메니아인 민족주의자들의 각성>

제국 밖에서는 아르메니아인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훈차크, 다슈 나크 등 아르메니아인 독립을 목표로 삼은 정당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일부는 제국에서 비밀 지부를 설립하여 오스만 관리를 노린 폭탄 테러 활동을 미미하게나마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붕괴 조짐과 유지를 위한 가혹한 탄압>

이 시기 오스만 제국은 곳곳에서 붕괴 조짐이 보이고 있었고, 사회의 유지를 위해 오스만 제국은 인명 살상을 동반한 대대적이고 가혹한 탄압을 전개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문제에 봉착한 오스트리아가 제국 내 최대 소수민족인 헝가리인들과 대타협을 이뤄 오스트리아-헝가리 체제를 성립시켰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범이슬람주의의 희생양이 된 힘없는 현지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

기독교 국가들에게 일방적으로 탄압 당하며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등 옛 식민지들에 살던 튀르크인 무슬림들이 오스만으로 피난 오면서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에 맞서 싸우자는 범이슬람주의가 유행시키게 됩니다. 이러한 법이슬람주의는 아르메니아인들에게는 큰 악재로 작용하는데, 현대 중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 기독교 외세에 맞서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주 먹잇감은 막강한 서양 외세보다는 만만하고 힘없는 현지 기독교인들인 경우가 잦기 때문입니다.

 

<동부국경에 술탄의 친위대, 하미디예 투입>

긴장감이 높아만 가던 가운데, 1894년 압뒬하미트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따 '하미디예'라고 이름 붙인 친위부대를 동부 국경에 투입했는데, 이들은 러시아를 상대하는 것이 창설 목적이었으나 대부분 자신들이 배치된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하는데 동원되었습니다.

오스만제국은 가뜩이나 반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지역에서 징세율을 두 배로 올리는 등 일부러 반란을 유도하려는 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기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연하다시피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곧 무자비한 학살이 뒤따랐습니다. 이스탄불에서 하미디예의 잔혹 행위를 막아달라고 술탄에게 청원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나, 오스만은 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이렇게 행동대장인 술탄의 친위대 하미디예 투입 과정을 거치며 대학살이 시작되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이 학살들이 어떻게 자행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배경, 오스만 제국과 아르메니아 밀레트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배경, 오스만제국과 아르메니아 밀레트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언급하며 자주 등장하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관한 글입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 내에서 아르메니아인을 대상으로 자행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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