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언급하며 국제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터키의 전신 오스만 제국 시절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관한 글입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 내에서 아르메니아인을 대상으로 자행된 일련의 집단학살사건입니다.
이 당시 오스만 제국은 여성과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집단으로 불태워 죽이거나, 발에 편자를 박고 춤을 추라며 채찍으로 때리거나, 볼 수 없다며 얼굴을 돌린 신부의 눈을 뽑아버리거나, 참수한 머리를 들고 의사에게 붙여보라고 하거나, 치아를 모조리 뽑은 뒤 이마에 박아버리거나, 참수한 머리로 때리거나, 남자들을 모아둔 뒤 총살한 다음 총알이 아깝다며 총검으로 확인사살을 하거나, 여인들을 성노예로 인신매매하고, 아이들을 배에 태우고 나가 물에 던져 죽이는 등 참으로 잔혹하기 그지없는 엽기적인 방법들까지 동원해가며 숱한 아르메니아인들이나 아시리아인, 아랍 무슬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잔혹한 학살들로 인해 통계상 감소한 인구만 해도 100만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해 터키는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에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정치적, 지정학적 갈등에 의한 사건?>
터키 측 친정부 학자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정치적, 지정학적 갈등에 의해 터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과정을 살펴보면 상당히 조직적이고, 인종적 논리에 따라 자행된 근대적 제노사이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 입장에선 전근대적인 술탄 정부보다 더 잔혹한, 근대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서양 제국주의 열강이나 나치 독일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민족 학살을 당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게 하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끔찍한 내용 정리
<강제 이주를 시키며 잔인하게 학살한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은 비틀리스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크게 물리치고 시간을 벌자 아르메니아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모두 살던 곳을 떠나 시리아 사막 등으로 강제 이주당했는데,, 오스만은 이주 전후 제대로 된 생필품을 제공하지 않으며 아르메니아인들을 의도적으로 아사시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오스만 군은 이주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학살을 자행하기도 하고, 야외에 노출된 아르메니아인들이 쿠르드족을 비롯한 적대 세력들에게 공격받는 것을 사실상 수수방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조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불가리아에 뺨 맞고 아르메니아에 화풀이한다.>
거기에 발칸 전쟁 당시 벌어진 학살도 문제였는데, 발칸 전쟁 때 불가리아가 포 마크인들과 튀르크 인들을 무차별로 학살했고, 학살을 피하여 몸만 겨우 빠져나온 수십여 만 난민들을 오스만에서 받아들였습니다. 이 학살 여파로 난민들은 정교회나 기독교에 대한 증오로 이를 갈았고, 결국 난민들은 민병대를 이루어 기독교인들에게 보복하겠다고 이를 갈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오스만 측이 이들을 정규군으로 받아들여서 아르메니아 기독교 세력 척결에 활용하여 불가리아인이나 아르메니아인이나 똑같다고 여기던 이들은 증오심으로 닥치는 대로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하게 됩니다.
<터키의 학살 은폐, 축소를 위한 주장들>
터키는 지금까지도 이 학살을 은폐, 축소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터키의 입장을 무분별하게 대변하는 자들은 저 학살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노선 갈등으로 자기들끼리도 죽이고, 아르메니아인들을 싫어한 쿠르드족들도 학살에 나섰고, 많은 수가 직접적으로 살해되지는 않고 기아와 질병으로 죽는 등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이라며 애써 오스만의 책임을 희석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아르메니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복잡한 상황을 오스만 제국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유대인이 대부분 기아와 질병으로 죽었으니 추위와 세균을 탓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런 지원도 보호도 하지 않으면서 가혹한 환경으로 내몬 것은 직접 죽이지만 않았다 뿐이지 사실상 학살의 의도를 갖고 자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을 저런 오지로 보낸 당사자들은 명백한 살해의 의도를 갖고 있었고, 단지 그들이 학살을 위해 선택한 수단이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학살한 숫자도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미, 반서구 분위기와 함께 옹호하는 분위기 형성>
이렇듯 특히 2000년대 초반 반미, 반서구 분위기가 유행하면서 무분별한 이슬람주의 띄워주기로 인해 오스만의 대학살을 옹호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터키가 갖는 영향력이 아르메니아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 목소리는 더욱 힘 있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터키의 극우 민족주의자나 이슬람주의자들의 주장을 수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논리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그들의 논리를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일제강점기도 같은 조선인 친일파에 의한 탄압과 고문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많았고 독립운동가들끼리도 간혹 이념 차이로 싸우는 일이 있었으며, 조선을 떠나 만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일본군의 총칼이 아닌 기아와 질병과 마적 떼에 죽는 조선인이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원인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일본이 제국주의적 강압 정책으로 우리를 괴롭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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